사적 제 227호.
강화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강화 12진보(鎭堡)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도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이다.
조선시대 광해군때 다시 고쳐 쌓았으며, 1658년(효종 9)에 강화유수 서원이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그 후 숙종 때(1679)에 이르러 완전한 석성(石城)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이다. 그 해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극동함대를 초지진, 덕진진, 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사격을 가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 되기를 거부,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전원이 순국하였다.
이 때 파괴된 문루와 돈대(墩臺)를 1976년에 복원하였으며, 당시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무덤과 어재연(魚在淵) 장군의 전적비 등을 보수·정비하였다.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와 쌍충비
당시 순국한 무명용사를 7기의 분묘로 모셔 놓음
손돌목돈대
광성포대
용두돈대
마주 보이는 덕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