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 전하며, 1916년 수리시 발견된 양간록에 의하면 선조 38년 (1605) 건물 일부 및 광해군 6년(1614)에 또다시 불이나 소실되었던 것을 재축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완공하였다 한다.
전등본말사지의 기록에는 철종 6년(1855) 규영화주가 중건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다포식 건물이다. 건물 네 귀퉁이에 나무로 깍아 만든 인물상이 있는 것이 특이한 건축물이다.
이 범종은 중국 북송 소성 4년 (1097, 고려 숙종 2년)에 숭명사에서 주조된 철종이다.
세계 제2차 대전시 일본인이 약탈하여 부평 병기창으로 옮겨 놓았던 것을 광복 후 독실한 불교신자가 발견 전등사로 다시 돌아와 현재에 이른 종이다.
위 부분에 쌍룡을 갖추고 용두 주변에는 16개의 연꽃잎으로 장식하고 몸체에는 위쪽에 8잎을 돌리고 그 및으로는 여러개의 옆띠로 위.아래로 구분 한다음 종선으로 위 아래 각 8개의 네모 구획을 마련하였다. 종구는 중국종에서 흔히 보이고 있는 물결모양을 이룬 듯한 8모로 되어있고 전체적인 형태는 개성에 있는 연복사 동종과 매우 흡사하다.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중국 철제종이 보물로 지정되어 철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종에는 시주인·동역인(董役人)·장인(匠人) 등의 성명이 양각되어 있다. 종구 하단에는 『대송화주 』라는 27자의 명문이 있다.
높이 164cm, 구경 100cm이다.
건축 년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전등사 대웅전 개와 중수기에 조선 고종 13년(1876)에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조선 중기의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집이다. 다포식 건축물이면서도 창방위에 평방이 놓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