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단양군의 단성면 하방리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사적 제265호).
주위가 대부분 붕괴되고, 북동쪽에 안팎으로 겹쳐 쌓은 부분의 안쪽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성의 남서쪽, 남쪽, 동남쪽의 3곳에 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성벽의 절단부가 있다.
북쪽은 남한강과 가파른 절벽의 자연적인 지리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단양)에 "성산성(城山城)은 돌로 쌓았으며, 주위가 1,767척이다.
안에 큰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하였다."는 기록에서 적성산성에 대한 기록이 처음나타난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읍내면 중방리 동헌의 왼쪽 산에 '적성(赤城)'을 뚜렷하게 표기하고 있으며 "둘레가 1,768척이다."라는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조산촌면 하진 가까이에 '성산(城山)'이 표기되어 있다.
적성산성은 성산성이나 산성으로 불리다가 1978년 성내에서 '적성비'가 발견되면서 적성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성내에서 발견된 비는 '단양신라적성비(국보 제198호)'로 명명되었다.
비석 외에 삼국 시대의 토기 조각과 기와 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 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 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 있어 신라의 축성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